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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 민족성 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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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나 내 반응과 진상 규명 == 점령기 동안 루이나 국내에서 이 정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점령지 보도는 군 당국의 통제를 받았고, 1970년대 루이나 사회는 [[검은 10년]]의 혼란 속에 있었다. 콘스탄티노폴 문제를 다룬 소수의 기사는 대부분 구역 전쟁의 폭력을 빌베른계와 혼혈계의 해묵은 민족 갈등으로 설명했다. 1981년 [[정보기관 조사위원회]]는 특무처의 활동을 조사하면서 콘스탄티노폴의 「더러운 전쟁」 일부를 확인했다. 그러나 위원회의 조사 범위는 정보기관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민정이양위원회와 내무부·교육부가 주도한 언어·교육·종교 정책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정책의 가해 구조 대부분이 정보기관이 아닌 일반 행정기관이었다는 점이 도리어 조사를 피하는 이유가 된 셈이다. 정책의 전모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 생존자 증언이 쌓이고 들로름 각서 사본이 공개되면서부터다. 루이나의 진보 언론과 학계는 이를 「콘스탄티노폴 민족성 말살」로 부르며 정부의 공식 인정과 사과, 유물 반환을 요구해 왔다. 루이나 정부는 과잉 집행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정책의 목적이 치안 회복과 시민 교육이었다는 공식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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